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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던가

왜 그랬던가
1975년 105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우성사
각본 이은성
촬영 이석기
조명 최임춘
편집 김희수
음악 한상기

허장강
박근형
양광남
박지훈

거슬러 올라가는 대신에 바로 지금 잠시 멈추어 서 보자. 나는 지난해에 몇 편의 영화를 보았다. <아가씨> 혹은 <밀정>그리고 <덕혜옹주><해어화>. 그런 다음 약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그 자리에 <암살>이 떠오른다. 여기에 변주에 가까운 <기담>< YMCA 야구단 > <그림자 살인>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이 뒤따라온다. 물론 맨 앞에 <모던 보이>가 있다. 올해에는 강제징용 간 조선인들이 노역에 지친 나머지 목숨을 건 탈출을 하는 <군함도>를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경향인지 아니면 시대정신인지 혹은 일시적인 유행인지를 가늠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염처럼 번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부정적으로 이 말을 사용하는 중이다.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자 갑자기 일제 강점기 문화에로 인문학은 관심을 돌렸다. 좋은 일이다. 나는 언제나 일종의 단절처럼 다루어지고 있는 이 시간적 단층을 언젠가 역사의 담론이 채워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담론들은 단층을 역사화 하는 대신 낭만화하기 시작했다. 물론 메이지유신이 가져온 일본의 근대화는 종종 식민지 경성에 믿을 수 없는 문화적 순간을 마련하였다. 나는 1930년대에 파블로 카잘스와 자크 티보, 알프레드 코르토로 이루어진 카잘스 트리오가 경성을 방문했었다는 기사를 읽고 어떤 쇼크를 받았다. 경성의 ‘모던 뽀이’들과 ‘모던 껄’들은 전설적인 카잘스 트리오의 연주를 감상할 기회가 가졌었다. 어쩔 수 없는 탄식. 눈앞에서 티보의 저 신비로운 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니, 아니 코르토의 전성기의 미스 터치의 건반을 직접 볼 수 있었다니, 그리고 카잘스의 춤추는 것만 같은 첼로를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니, 상상할 수 있겠는가. (다소 역겨운 표현이지만) 식민지 신민들의 과분한 기쁨.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부쉬 현악사중주단이 경성에 와서 베토벤 현악 사중주의 레퍼토리를 연주했었다. 이 악보를 역사상 가장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었던 단체의 연주로 들었던 세대. 21세기의 우리는 그걸 고작해야 SP 복각음반으로 수 없이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하면서도 도대체 정말 그들의 음색은 어떠했을 지 상상만 하고 있을 따름이다. 물론 그걸 들으러 다닌 ‘뽀이’들과 ‘껄’들은 친일분자들의 자식들이었을 것이다. 이미 역사의 저 너머로 스러져버린 조선의 정체성 따위는 아무 관심도 없었을 것이며, 풍문으로 전해온 청산리 눈밭에서 벌어진 전투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36년 일제 식민지 지배를 받은 다음 미국에 의해 해방되자 소설가 이광수가 했던 유명한 한 마디. “그렇게 빨리 해방이 될 줄은 몰랐다”는 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그리고 이 말은 수없는 변주의 버전으로 식민지 강점하를 배경으로 한 해방 ‘이후’ 영화에서 마치 알리바이처럼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나는 먼저 한계를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36년을 설명하는 것은 내 능력을 훨씬 벗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이 말은 덧붙이고 싶다. 여기엔 아직도 설명되지 않은 (어쩌면 아직도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


<밀정> (김지운, 2016)

<암살> (최동훈, 2015)

한국영화사에는 일제 강점기 36년을 다룬 영화들의 두 시기가 있다. 하나는 1960년대 말에서 1979년까지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지금이다. 나는 앞의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들을 전기 식민지 영화라고 부르고 바로 지금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포스트 식민지 영화라고 부르겠다. 그 둘의 차이는 보기보다 단순하지 않다. 무엇보다 먼저 1960년대에 만들어진 전기 식민지 영화들과 바로 지금 만들어지는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 사이의 결정적 차이. 한 쪽은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과 그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그 시대와 직접 맞대면하고 살아보았고 다른 한 쪽은 양쪽 모두 그 시대를 교육을 통해서 학습했다는 사실이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해보고 싶다. 살아보았다, 라는 거의 절대적인 차이. 한 쪽은 영화를 보는 시각적인 리얼리티에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들의 경험이 포함되고 다른 한 쪽은 지식의 상태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물론 경험과 지식의 차이를 단순하게 삶의 문제로 치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떤 수수께끼가 개입한다. 살아본 사람이 대상을 관념화할 수 있는 거리의 한계만큼 똑같이 경험해본 적이 없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거리의 한계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영화에서 재현의 표식들이 어떻게 공유되었는지를 질문하는 것은 경험이라는 네트워크의 토대를 물어보는 것이다. 별다른 해독을 요구하지 않는 기호들의 기억. 게다가 더딘 근대의 풍경은 아직까지 일제 강점하의 생활을 재현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 말뜻은 일제 강점하의 이미지와 말이 여전히 일상 안에 머물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1970년대에 영화를 만들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촬영 팀은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가면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얼마든지 자신들이 살았던 시간의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미지에서 기억은 지속이라는 흐름 안에서 머물고 있다고 일깨워준 베르그송의 조언을 잊으면 안 된다. 순수 지각없이 표상이 성립될 수 있을까. 그런데 그것 없이 세워진 포스트 식민지영화들의 향수들이 그리워하는 순수 지각은 어디서 출발한 것일까. 여기에 좀 더 복잡한 역사적 논점이 기다리고 있다. 1980년을 경계로 갑작스러운 부동산 산업은 거의 대부분의 도시에서 그 흔적을 폭력적으로 지워나갔다. 여기에 역사의 트라우마에 대한 국가적인 말소 따위란 없다. 오직 자본주의 경제학의 논리만으로 한국사회의 풍경을 바꿔나갔다. 그런 다음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이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일제 강점하를 오로지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부채 위에 세워진 채 정책적으로 편향되고 부정확한) 자료와 학교 제도의 교육을 통해서만 학습한 세대였다. 그건 만드는 쪽도 그렇고 보는 쪽도 그렇다는 뜻이다.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의 풍경은 상상으로 만들어진 기호이며 사진을 경유하여 재현된 이차 자료들이다. 여기에는 어디에도 경험이 매개되어 있지 않은 지식의 한계 속에서의 인공적인 세계가 만들어졌다. 이를테면 더도 덜도 아닌 <아가씨>.


<아가씨> (박찬욱, 2016)

임권택을 설명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나는 그의 영화들을 볼 때마다 종종 과도하게 (이런 표현이 용서된다면) 유물론적 경험론에 사로 잡혀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지금 이 표현을 엄밀하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영화가 일제 강점기를 무대로 건드릴 때마다 거기에는 위태로울 정도로 확신에 찬 어떤 장면들과 마주하게 된다. 거기서 감도는 어떤 정서, 어떤 추억, 어떤 감흥, 어떤 기억, 어떤 흔적, 어떤 시간. 아니 차라리 누군가. 그런 다음 임권택은 이 시간의 선을 망쳐버린 역사라는 법칙 앞에서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져가는 섬광 같은 순간을 붙잡기 위해 애를 쓴다. 임권택의 영화가 아름답다면 그것은 가련한 실패의 수단으로 시청각 기호들이 활동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지만 이 무자비한 목적론적 설명. 나는 <왜 그랬던가>를 말하기 위해서 여기서는 첫 번째 시기의 일제강점하를 무대로 한 전기 식민지 영화만을 건드려볼 생각이다. 그러면서 이따금 바로 지금 여기의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을 호명할 것이다. 상황을 먼저 설명하겠다. <왜 그랬던가>는 그때 만들어진 거의 하나의 제도적인 장르라고 불릴만한 일제 강점기 독립군 영화중의 한 편이었다. 그냥 간단하게 이 영화들은 인기가 없었다. 이 영화들의 대부분은 마지못해 만들어졌다. 박정희 제3공화국은 북한과의 이데올로기 경쟁 속에서 두 가지 이념을 들고 나왔는데 하나가 (물론) 적대적인 반공주의였으며 다른 하나가 맹목적인 민족주의였다. 한국전쟁의 경험은 가까이 있었고 불씨를 안고 있는 휴전은 반공을 내세워서 민주주의를 향한 어떤 정치적 저항도 무력화시켰다. 그러는 한편 민족주의 이념 전파는 둘로 나뉜 한반도에서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놓고 권력이 헤게모니 장악을 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 되었다. 1960년대 남한 민족주의는 단군의 단일민족이라는 신화적 서사(‘우리는 하나다’)와 일제 강점하의 식민지 지배라는 다른 민족에 의한 침략의 경험을 경유시켜(‘소련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북한은 또 다른 식민지이다’, 라는 정식화. 그래서 북한을 괴뢰(傀儡)정권이라고 불렀다) 상상적 공동체로 접합시킨 이데올로기였으며 사실상 그것이 변형된 파시즘이라는 것을 드러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정책 수행과정에서 문화부는 영화를 앞세워 대대적인 이념 홍보를 했으며 (아직 텔레비전이 대중보급되기 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주기 바란다) 영세자본과 탈세, 사실상 암시장 구조에 가까운 배급 체제를 갖춘 그 당시의 한국영화는 검열과 지원 정책이라는 채찍과 당근에 길들여져 정부가 요구하는 것을 순순히 수용하였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힘세고 나쁜 일본, 힘없는 착한 조선으로 단순하고 도식적으로 이분화 되었다. 그런 다음 기괴할 정도로 이 과정에서 민족의 수난을 상징하는 구체적인 수사로 망설임 없이 가혹한 고문을 개입시켰으며 종종 이 장면에서 여자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육체를 포박당한 채로 전시하거나 신체의 일부를 훼손당하면서 변태적인 관음적 시선의 에로틱한 대상이 되었다. 여기서 소름 끼치게 만드는 순간은 유교를 내세운 검열이 과도할 정도로 성적인 묘사에 히스테리에 가까운 가위질을 하다가도 일제 강점하의 고문장면에 대해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관대해질 때이다. 이를테면 <아가씨>의 관음적 마조히즘의 전시와 <밀정>에서 잡혀온 다른 ‘남성’ 독립 운동가들을 제쳐놓고 유일한 여자인 연계순을 과도할 정도로 가혹하게 고문하는 장면은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 그리고 이 장면들은 전기 식민지 영화들과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 사이의 간극이 서로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들의 논점으로 돌아가자. 여기서 전기 식민지 영화들은 일제강점하 식민지 이야기를 다루는데 아무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건 만드는 쪽도 그렇고 보는 쪽도 그렇다. 남한은 프랑스와 달리 해방 이후 부역자들을 심판하는 일에 실패했다. (아니, 실패한 정도가 아니라 그들만이 부를 성공적으로 축적했다) 그래서 일제 강점하를 다루는 것은 언제나 현실적으로 불편한 일이 되었다. 한국근대사에서 해방은 친일부역자들의 승리의 역사이다. 여기에 복잡한 계산이 끼어든다. 사실상 이 전기 식민지 영화들은 역사를 다룬다기보다는 1960년대 박정희 체제 혹은 1970년대 유신체제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데올로기 블록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국가에 무조건 복종하는 민족주의 이념의 전기 식민지 영화들은 어떤 이해관계에 앞서는 희생을 강요하면서 해방 ‘이후’의 국가에 관한 충성을 어디서 시작하건 동일한 결론에로 이르는 필연적인 정의의 진리인 것처럼 위장시켰다. 그들은 항상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 다음 자발적으로 희생을 받아들였다.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은 포스트 식민지영화들조차 이런 희생양의 논리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면서 반복 재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기서 보는 것은 우리의 학습 과정이 식민지 강점하의 지식이 아니라 거기서 파생된 해방 이후 이승만-박정희 체제라고 불리는 교육 프로그램이 얼마나 끈질기고 악랄하게 뇌에 달라붙어있는 것인지를 반복해서 확인하는 이미지 서사들이다. 이를테면 <밀정> 혹은 <암살>. 여기에는 어떤 전도가 있다. 이 전도를 이론화 시키는 것은 이 지면을 훨씬 벗어나는 일이지만 정식화시킬 필요는 있다. 이때 이 정식은 일종의 도착이라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나는 내 선택이 옳기 때문에 내 민족을 위해 희생한다, 로부터 부지불식간에 내 민족을 위해 희생하기 때문에 내 선택이 옳다, 라는 착각에로의 자리바꿈은 나를 국가 앞에 완전히 굴복시키기기를 요구하는 유신정권의 파시스트 정책에 완전하게 부합하는 문화적(이자 동시에 정치적인) 훈련과정의 반복이다. 나는 이 기괴한 정식을 들고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 식민지 시대를 경험했던 세대의 전기 식민지 영화에 대해서 질문해보려고 한다.


「마록열전」

<왜 그랬던가>는 원작과 연결 지어 다소 중첩된 설명을 요구한다. 겉으로 드러난 이 영화의 원작은 서기원 작가의 「마록열전(馬鹿列傳)」이다. ‘마록’은 ‘바보자식’을 뜻하는 일본말 ‘바카야로(馬鹿野郞)’의 앞 말을 딴 것이다.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어지는 이 소설은 1971년 3월 현대문학에 첫 번째 이야기가 발표되었고, <왜 그랬던가>가 각색한 마지막 이야기에 해당하는 다섯 번째 이야기는 1972년 11월 문학사상 11월호에 발표되었다. 이야기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일제 강점기를 살아간 마록이라는 인물이 처세술이라는 미명하에 구차하게 연명해가는 이야기를 풍자적으로 그려낸 세태소설이다. 그러나 임권택과 시나리오 작가인 이은성은 이 이야기를 충실하게 영화에 옮길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차라리 서기원 작가의 원작은 그저 알리바이처럼 보인다. <왜 그랬던가>의 원래 제목은 ‘알라스카의 늑대’였다는 것을 자막에서 밝히고 있다. 말하자면 임권택(과 이은성)은 원작소설 「마록열전」과 <왜 그랬던가>를 일정한 거리만큼 떼어놓고 싶어 한다. 혹은 그들이 이 영화에서 하고 싶었던 소설이 무엇이었는지를 분명히 알리고 싶어 한다. 왜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아마 그건 ‘알라스카의 늑대’의 또 다른 제목이 「야성의 부름」이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의 제목을 듣는 순간 누군가는 여기서 멈춰 설 것이다. 당신이 떠 올린 바로 그 소설이다. 잭 런던이 1903년에 쓴 소설. 이미 알고 있을 이야기를 다시 소개하는 것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이야기를 1975년의 임권택과 연결지어 읽어주기 바란다. 잭 런던은 사회 밑바닥에서 태어나 노동으로 단련된 작가이다. 그런 다음 사회주의 정당에 가입하여 당원으로 머물렀다, (하지만 그의 삶 마지막 순간에 탈당했다) 그가 쓴 「강철군화」는 자본주의 진영에서 태어난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주의 소설이며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SF 소설이다. 러시아가 막 볼세비키 혁명에 성공한 다음 번역된 이 소설을 읽고 레온 트로츠키는 열렬한 찬사를 보냈다. 많은 문학 비평가들은 사회주의 진영에서 태어난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주의 소설이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라면 그 역할을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강철군화」가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마지막 구절을 종종 인용한다. 강철군화 아래 봉기가 실패하자 이렇게 말한다.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영원히는 아닐 거예요, 우리는 배웠어요, 내일 우리의 대의는 다시 일어날 거예요, 지혜와 훈련으로 더 강해질 거예요” 그런 이유 때문에 「강철군화」는 박정희 체제에서는 금서의 목록 중에 맨 앞에 있었다. 그래서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은 「강철군화」가 번역될 때까지 이 풍문 속의 소설에 대한 예고처럼 읽혔고 잘 요약된 은유처럼 해석되었다. 나는 당신이 이해하기 힘든 1970년대의 상황을 소개해야 할 것 같다. 겉으로는 「야성의 부름」이 청소년문학의 목록 사이에 끼어 의인화 기법을 이용한 동물소설처럼 소개되었지만 은밀하게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개처럼 살아가는 인간이 어떻게 사람으로서의 자기의 본성을 일깨우는 지에 관한 미래 사회주의 혁명의 밑그림처럼 읽히기도 하였다. 물론 거기에는 잭 런던이라는 작가에 대한 소개가 곁들여졌다. 게다가 임권택(과 이은성)은 「야성의 부름」이라는 소설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왜 그랬던가>의 원작을 잭 런던이라고 염두에 두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원작에도 없는 늑대와 개 이야기를 그렇게 반복해서 할 리가 없으며 심지어 영화를 진행하다 말고 김참의의 둘째 아들이자 독립운동 의열단 활동을 하는 태열이 연락책을 하고 있는 송주희에게 책방에서 힘들게 구했다면서 「야성의 부름」이라는 책을 선물하는 장면을 구태여 넣을 이유가 없다. 심지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거기서 멈춰 선 다음 어렵게 구했다면서 “우리말로 번역하면 황야의 외침, 이라고 할 수 있죠”라고 우리에게 그 책의 존재를 가르쳐준다. (이 책의 원제는 「The Call of the Wild」이다. 1960년대에 한국에는 「알라스카의 개」로 번역되었다) 아마도 일본어 번역판본 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일본에서 언제 초판 번역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송주희가 이 책을 읽는 장면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녀는 고문을 당하면서 이 책의 대사를 낭송하다시피 한다. 기노시타 형사가 그녀의 오빠가 저지른 죄상을 열거하면서 “불온사상을 가지고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파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하자 “늑대는 개가 될 수 없는 거겠죠. 마찬가지로 대한인은 대한인일 수밖에 없는 거죠” 라고 대꾸한다. 영화의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하던 마영이 독립군을 돕다가 잡혀가게 될 때 그의 아들이 호송차를 뒤따라 달려가면서 아버지에게 울면서 외친다. “아버지 나, 대학 안 갈래요, 알라스카에 갈래요. 알라스카 알죠, 아버지” 마영이 그 책을 읽었을 리가 없는 데도 그는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태열이 주희에게 「야성의 부름」을 주는 장면

그리고, 그리고 반드시 여기에 셈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은 <왜 그랬던가>를 만들었던 해이다. 1975년 11월 15일 허리우드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그 해 1월 유신헌법이 국민투표로 통과되었고 4월 8일에 긴급조치로 인민혁명당 재건위 관련자를 체포한 다음 대법원 판결을 내리고 8명을 채 하루가 되지 않아 사형 집행했다. 5월에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되었고 온 세상이 숨을 죽였다. 민방위를 창설하였고 무시무시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해 이만희<삼포가는 길>을 편집하다가 편집실에서 쓰러졌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바보들의 행진>은 검열로 거의 사지절단 당하다시피 했다. 가장 나쁜 상황. 임권택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물론 여기서 멈춰야 한다. 나는 지금 전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비평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물어보고 싶어진다. 그 순간 왜 당신은 잭 런던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여야 했나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그저 세간에서는 새마을 국책영화를 만들고 B급 다찌마와리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당신을 부르던 시간에, 그저 혼자서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내면의 풍경 앞에서, 어쩌면 사정없이 조여들어오는 연좌제의 두려움 앞에서, 왜 위험하기 짝이 없게도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을 만들어야 했나요?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왜 그랬던가>를 보다가 그 문제의 ‘桃苑茶室’에서 김참의의 아들이 송주희에게 잭 런던의 책을 건네주는 순간 무언가에 감전된 것만 같은 쇼크를 받았다. 그리고 이제는, 아마, 당신도 내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족보> (1978)

<왜 그랬던가> (1975)

나는 몇 번이고 같은 자리로 돌아와서 임권택의 영화들이 서로를 이루는 방식에 대해서 종종 (데리다의 멋진 표현을 빌려) 서로 대리하거나 보충하면서 서로가 서로에 대한 토대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한 가지 단서를 달아야 한다. 임권택의 영화 안에서 종합이란 없다. 그는 자기의 내부를 모순된 사태 그 자체로 내버려두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종종 영화들 사이에서 약간 의아할 정도로 이 영화가 저 영화의 무언가를 폭로하는 듯한 거울 효과를 발휘할 때가 있다. 이때 대부분 이 문제를 앞으로만 밀고 나아간다. 나는 오히려 반대의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보고 싶어진다. 그 자리에 놓인 영화중의 하나가 <왜 그랬던가>이다. 임권택의 영화를 설명하는 대부분의 비평은 <왜 그랬던가>를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 물론 이 영화는 숨은 걸작, 같은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왜 그랬던가>가 없었다면 <족보>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상 두 영화는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반복한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단지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만이 아니다. 두 영화는 모두 친일부역자였던 아버지가 (서로 다른 이유이기는 하지만) 일련의 시련을 겪으면서 죽음을 대가로 치르면서까지 자기보다 소중한 그 무언가를 지키려고 한다. 같은 말이 반복. 자기보다 중요한 그 무언가. <왜 그랬던가>의 일본 경찰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동포를 밀고하는 마영과 <족보>의 모두로부터 존경받는 수원 유지인 설진영은 일제 강점기를 살아간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서로 전혀 다른 자리에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살아온 것처럼 살아가면 그들은 아무 것도 잃지 않고 살 수 있었지만 그것을 내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과 바꾼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일한 과정을 거쳐 같은 결론에 이른다. 심지어 <왜 그랬던가>에는 이야기의 진행과 아무 상관도 없이 조선 총독부의 경감이 기노시타 형사를 세워두고 조선 도자기를 감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거기서 경감은 감탄을 하면서 “조센징들이 우리들보다 월등히 앞섰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라는 대사를 한다. <족보>의 설진영은 자살하기 직전에 도자기를 정성스럽게 정리한다. 둘 사이의 유사점은 주인공에서 멈추지 않고 마치 서로 공명현상을 불러일으키기라도 하듯 이상한 곳에서 반복된다. <왜 그랬던가>에서는 아무 상관도 없는 송주희가 일본 형사들에게 고문당하는 것을 마영은 고통스럽게 지켜본다. <족보>에서 딸의 약혼자는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설진영을 핍박하기 위해 붙들려가 고문을 당한다. 다소 가혹한 표현이지만 그들 자신은 고문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과정은 동일하게 그들을 자발적인 죽음에로 이끈다. 여기서 왜 구경꾼들이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이때 나는 다소 기이하게 반문해보고 싶어진다. 일제 식민지 강점하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차라리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임권택이 일제 식민지 강점하에서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보물은 무엇일까. 그런데 그 무언가는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동일한 보물로 취급될 수 있을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그 보물은 해방이 되자 거의 돌아보지도 않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렸을까. 혹시 여기에 전기 식민지 영화(들)의 어떤 수수께끼 같은 핵심이 있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이 질문에 대해서 임권택은 <왜 그랬던가>에서 거의 하나의 정식화와 같은 대답을 제시한다. 마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하나의 조건에 놓여있다. 그것은 물론 일제 강점기에 놓여있는 그의 조국이다. 마영이 체포되어 감옥에 끌려 갈 때에도 세상에는 어떤 변화도 감지되지 않는다. 게다가 세상의 모든 일은 마침 그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마영의 거의 유일한 소망대로 그의 아들은 경성제국대학에 합격했다는 통지서를 받는다. 그러므로 마영의 변화는 외부 조건의 변화에 반응한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서의 어떤 요구에 따른 것이다. 어떤 정신적 신호. 그리고 응답. 이때 그 설명을 단순하게 마영의 신념이 바뀌었다고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렇게 말해버린다면 차라리 이건 신념이라기보다는 변덕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기에 어떤 조건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영의 변화를 주변의 누구도, 심지어 그의 가족들조차, 이제까지 아버지를 경멸했던 그의 아들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마영은 이 순간 이제까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속적 성공의 거의 문턱 앞까지 가까스로 도달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걸 자포자기하듯이 버린다. 지금 자신이 하는 행위가 결국에는 실패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물론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무엇이 마영을 이기적이긴 하지만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삶으로부터 도무지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차원의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한 희생의 선택에로 이끄는 것일까. 마영이 희생을 한다고 해서 독립운동의 큰 사건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국면이 전환되는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하는 것도 아니다. 마영은 민족, 과 같은 거대한 담론에는 끝끝내 아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것이 임권택의 영화가 그 주변의 전기 식민지영화들과 결별하는 지점이다. 역사 앞에서 좀 더 냉정하게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일본 식민지로부터 독립운동을 통해서 안으로부터 해방된 것이 아니라 미국과의 전쟁에 항복함으로써 바깥으로부터 수동적으로 얻어진 것이다. 게다가 <왜 그랬던가>의 인물들에게는 주어진 조건에 대한 어떤 외부적 정보도 주어지지 않는다. 차라리 임권택은 이들의 세계를 어떤 가능성으로부터도 차단된 상황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끊임없이 전선을 확장하고 지칠 줄 모르는 전쟁을 했지만 마영은 세계의 새로운 질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지 전혀 알지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가혹하게도 객관적으로 마영은 이 상황에서 그저 희생당하는 것이다. 객관과 주관 사이의 서로 넘을 수 없는 간극.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그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 선택은 오로지 그 자신을 위한 결정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이행이 있다.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마영이 자신의 정신적인 매트릭스 자체를 현실적인 조건으로부터 그 무엇인가의 환상에로 옮겨놓은 것이다. 마영은 왜 현실로부터 환상에로 자발적으로 이행하는 것일까. 가장 쉬운 대답은 마영이 윤리적 결단을 내린 다음 그 심연을 횡단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반론은 간단하다. 그렇다면 왜 해방이후에 임권택의 주인공들은 동일한 행위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내 대답은 전기 식민지영화들, 그 영화들 모두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임권택은 오직 여기서만 성립하는 셈을 치루면서 그것이 보물과 바꿀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결단을 내리는 중이라는 것이다.


마영

자객

그 보물은 무엇일까. 그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약간 장황하게 이야기의 윤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영은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을 일본 경찰에게 밀고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리 빼돌리며 양쪽에서 돈을 챙기는 박쥐같은 인간이다. 하지만 마영은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해서 조금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 순간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행위가 부끄러운 줄 모른다기보다 좀 더 정확하게는 자기 자신을 위한 알리바이가 있다. 알리바이? 그렇다.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의 입장. 물론 그 자신도 자기가 무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죄의식을 성공적으로 떠넘긴다. 그때 그의 죄에 대한 책임은 영화에 존재하지 않는 그의 아버지에게 있다. 마영은 한일합방에 반대한 아버지 때문에 자기 인생을 망쳤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있다. 영화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이야기를 할 때보다 더 분노한 마영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다. 그가 살아가는 세계의 밤. 박쥐가 마음껏 날아다니는 시간. 이때 박쥐는 오로지 자기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마치 자기의 망친 삶의 원인을 향해서 복수를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만일 그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다른 기회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는 주변에 자기를 노리는 수많은 자객들에게 쫓기면서 수시로 이사를 다녀야 한다. 마영은 지금 목숨을 걸고 이 일을 하는 중이다. 첫 시퀀스가 끝나고 집으로 귀가하면서 그를 뒤쫓는 자객으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런 다음 자객은 내내 그의 뒤를 쫓으며 기회를 보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이 일을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일말의 후회도 없이 수행하는 중이다. 무엇이 그에게 이 일을 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일까. 임권택은 바깥이 아니라 안으로, 더 안으로 파고 들어간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단순해보이지만 그의 삶 전체 내내 진행되어왔던 그 무거운 그림자와의 투쟁. 마영이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을 배신하고 밀고하는 것은 역사의 이치를 반대한 아버지 때문에 망친 자기 삶에 대한 보상의 요구이다. 약간 따분하지만 좀 더 도식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마영의 행위는 아버지의 결정으로 자기 삶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을 과정과의 주관적인 인정투쟁이며 역사의 객관적인 진행을 외면하고 자기 서사의 내면화로 재도식화 해나가는 퍼포먼스이다. 이때 그 밑바닥에는 애처로운 호소가 들리는 것만 같다. 아버지, 왜 당신은 당신의 아들의 앞날에 대해서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나요. 당신의 아들이 살아야 할 조선이 한일합방이 된 다음 식민지라는 사실이 되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걸 정말 몰랐나요. 일본 식민지가 되었을 때 당신의 아들은 어떻게 견뎌야 하나요. 아버지의 침묵. 마영의 아버지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이미 마영에게 오직 부정하는 것 이외에 대결할 방법이 없는 대상이 되었다. 이때 이 모습은 마영의 절반이다. 그는 집에 귀가하자마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애로운 아버지가 된다. 그런 다음 자신의 아들이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하기만을 바라면서 그걸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잠시 후에 마영이 그렇게 열심히 돈을 모으는 이유가 아직 합격하지도 않은 아들의 대학 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이유를 서둘러 충족시키려는 이 간절함. 이때 마영의 행위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기에게 행하지 않은 것의 정확한 반복이다. 혹은 해주기를 기대했던 것의 재현이다. 나는 내 아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럴 뿐만 아니라 그걸 위해서 내가 무얼 해야 하는 지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러므로 그걸 해야만 해요. 만일 이것을 마영이 아들을 위해 희생하는 행위라고 읽으면 그건 표면만을 건드린 것이다. 정확하게 마영은 그 자신이 아니라 그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하지 않은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아버지와 자기를 동일시하는 데까지 밀고 나간다. 이 부정적 동일화. 혹은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서사와의 동일화. 이때 마영의 동일화는 보편 역사로부터 떨어져 나와 특수하고 개인적인 서사 안에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반대로 이 서사가 마영을 포획하고 그 안에서 텅 빈 서사의 공백을 메우라고 요구하기 시작한다. 비극은 마영이 객관적인 현실 속에서 가상의 대리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그 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는 텅 빈 공허 안으로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아버지도 내 청을 들어주시오.”












일본인들에게 폭행 당하는 마영의 아들








“아버지, 이야기나 할까요” 그리고 갑작스러운 중단

갑작스러운 에피소드. 마영의 아들은 합격통지서를 받아오던 날 술에 취해서 느닷없이 아버지에게 질문한다. “나도 아버지 부탁대로 했으니 아버지도 내 청을 들어주시오.” “아무 것도 필요 없어요. 나는 개의 자식으로 살으리오까, 늑대의 자식으로 살으리오까?” 물론 잭 런던의 책을 빌린 질문이다. 이때 이 책을 읽은 적이 없는 마영은 이 질문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아들이 술 취해 하는 소리로만 생각할 뿐이다. 바로 다음 시퀀스. 마영의 가족은 함께 경복궁에 나들이를 간다. 여기서 백주 대낮에 근정전 앞에서 오줌을 싸는 아이를 수수방관하는 일본인 엄마에게 마영의 아들은 예의를 갖추어 야단을 친다. 하지만 이것을 모욕이라고 생각한 일본인 엄마는 다른 일본인들을 끌고 와 마영의 아들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가한다. 자기 아들이 폭행을 당하는 꼴을 본 마영이 달려가 말리지만 그들은 함께 가세한 일본인들에게 그저 무기력하게 당할 뿐이다. 그런 다음 이상한 씬이 이어진다. 아들은 이불에 누워있고 마영은 벽에 기대앉아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 아들은 아마도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누우세요, 아버님도” 그 말을 듣고 마영은 옆 자리 이불에 눕는다. 그러자 아들이 말한다. “아버지, 이야기나 할까요” 임권택은 매우 공들여 연출하다가 갑자기 여기서 쇼트의 진행을 중단시킨다.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마영이 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는지, 아니면 한 밤중에 부자지간에 언성을 높였는지, 그도 아니면 이야기는 중단되고 잠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임권택은 이 결정적인 순간을 하나의 블랙홀로 만들어버린다. 아마 보물은 그 블랙홀에 있을 것이다. 이것이 임권택이 보물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마스크를 쓴 마영

물론 여기가 끝이 아니다. 마영은 그 다음 날 경찰서로 출근하면서 입가에 난 구타 흔적을 감추기 위하여 큰 마스크를 쓴다. 이때 이 마스크는 동시에 밀고가 어제까지의 일이었던 마영이 그 행위를 거절하는 하나의 기호처럼 읽힌다. 그런 다음 마영은 적극적으로 자신이 이제까지 밀고 대상으로 삼았던 김참의 아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그것은 독립운동을 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다고 갑자기 민족에 대해 자신이 해야 할 어떤 임무를 깨달은 것도 아니다. 이 영화에는 그런 순간이 없다. 다만 이건 마영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의 제스처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는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용으로는 반대이지만 형식적으로 이 행위는 이제까지 마영이 해온 것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다만 그 방향이 세 개의 씬을 사이에 두고 반대로 바뀌었을 뿐이다. 여기서 까다로운 운동이 발생한다. 무엇을 하려는 지는 알겠다. 그런데 마영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이 대립의 운동에 대해서 먼저 그 성격을 살펴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마영은 이제까지 부정해온 것을 긍정하면서 긍정해온 것을 부정하는 중이다. 이때 목적어는 민족이나 독립운동이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의 아들 사이를 매개하는 텅 빈 자신의 자리이다. 그는 이제까지 아버지와 자신의 선을 끊어내기 위해서 부정의 행위를 맹렬하게 해 왔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과 아들의 선을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떤 절단도 중단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차라리 이 과정은 만들어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의 반복인 것이다. 늑대는 개가 아니며 개는 늑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늑대는 개가 되는데 실패한다. 세 개의 선은 서로 연결된 것이며 사실은 하나의 선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긍정한다.






“바카야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너희들 왜놈이 아닐까?”

이제 거의 기괴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마지막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임권택은 여기서 보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마영은 김 참의의 아들을 돕지만 그의 계획은 거의 완전히 실패로 끝난다. 모든 계획은 탄로가 나고 마영은 그렇잖아도 의심의 눈길을 보내던 기노시타 형사에게 체포된다. 마영이 이제까지 해 왔던 밀고 행위에 대해 단 한 번 속죄를 하기라도 하듯 목숨을 걸고 했던 행위는 실패로 끝난다. 더 상황을 절망적으로 만드는 것은 큰 부자인 김 참의는 총독부에 돈을 바친 다음 사건을 무마시킨다. 김 참의 아들 관점에샬옌뺨摸?여기까지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어떤 장애물도 없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어리둥절할 정도이다. 그렇게 되면서 사실상 마영의 행위는 그 자체로 무의미해진다. 그렇다면 이 실패의 서사가 왜 필요해진 것일까. 나는 여기서 이 질문을 더 밀고 나아가고 싶다. 왜 세 개의 씬, 그러니까 블랙홀처럼 막아선 세 개의 씬 다음에 실패가 기다리고 있느냐는 것이다. 편집은 마치 이 실패가 세 개의 씬의 결과처럼 읽힐 수도 있게 배치되어 있다. 잡혀온 마영 앞에서 기노시타 형사는 거만하게 충고하듯 말한다. “바카야로, 아무리 날뛰어봤자 조선은 영원히 일본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거야. 알았나, 바카야로” 그러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영은 기노시타 형사를 정면으로 마주보고 대답한다. “내가 광복된 조국을 못 본다고 치자, 그리고 또 내 아들이 조국의 광복을 못 본다고 치자, 그러나 아들에게는 손자가 있고, 또 손자의 아들이 있고, 이렇게 우리 민족이 멸망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광복의 날이 온다. 바카야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너희들 왜놈이 아닐까?” 마영이 생각하기에 ‘왜놈’이 정말 깨닫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답은 언젠가 광복의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이 아니다. 마영은 자신이 그걸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들도 볼 수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 아들의 아들도 볼 수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핵심은 이 선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때 마영의 대답에는 만일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 광복을 볼 수 있다면 그건 자신이 보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여기에 역설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 선은 반대로 위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성립하는 것이다. 이 대답을 하는 순간 마영은 이제까지 부정한 아버지를 완전하게 긍정하는 것이다. 보물은 여기에 있다. 이 선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 대답을 임권택은 좀 더 정교하고 세련되게 <족보>에서 한다. 얼핏 보면 차이를 알 수 없는 그 대답 속에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어떤 심연이 있다. 대부분의 전기 식민지영화들이 그 대답을 민족에서 찾을 때 임권택은 거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 유교에서 이끌어낸다. 유교라는 절대적인 지식. 이때 절대적인, 이라는 표현은 거기에 모든 것이 우선권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것에 한계를 부여한다는 뜻에서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임권택은 우리가 무엇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엇에로 되돌아오는지를 분명하게 만든다. 같은 동포들 중의 누군가가 해방을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 임권택은 그것을 분명히 한다. 내 아들이 보아야 하고, 아들의 아들이 보아야 하고,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 보아야 한다. 나는 이것이 올바른 대답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대답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 <씨받이>를 다루면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상황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지금 민족주의가 권력의 담론이 되었으며 동시에 법의 통치수단이 되었던 시기의 이야기를 진행하는 중이다. 영화에서 민족은 권력자의 형상이 되었으며, 그 안에서 국민은 끊임없이 민족으로 환원되고 있었다. 그 안에서 임권택은 예기치 않은 것을 꺼내 들었다. 이것은 단순하게 아버지와 아들의 정신분석적인 도식에로의 환원이 아니다. 마영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운명에 이끌리는 오이디푸스와 달리 너무 많이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제기된 것은 특수한 아버지와 아들, 이렇게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유교적 ‘父子’의 귀환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임권택은 이 과정에서 마영이 아버지라는 자리를 결국 떠맡게 되는 것을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안에 들어가는 대신 유교라는 의무의 체계 안으로 편입되는 것으로 뒤집는다. 이것은 비로소 그 속에 나도 포함되었다는 상상이 안겨주는 기쁜 희생이 아니라 결국 그 안에 있어야한다는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반성에 찬 희생이다. 보물은 아들을 아버지로 만들어주는 그 무시무시한 체계 안의 선이다.

그렇다면 뒤따라오는 질문에도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임권택이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이 귀환은 해방 이후에는 사라졌는가. 무엇이 이 귀환을 가로막는가. 반대로 무엇이 식민지 강점하에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가. 거의 뒤따라 만들어진 <깃발없는 기수><짝코>에서 그들은 보물을 누릴 기회를 갖지 못한다. 혹은 좀 더 뒤에 만들어진 또 다른 한국전쟁 이후의 정식화인 <길소뜸>은 그 보물이 완전히 유실되었음을 보여준다. 아니, 차라리 해방(과 뒤이은 한국전쟁)은 유교라는 체계를 어떻게 갈기갈기 찢어놓는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때 무엇이 무엇으로 이행하고 있는가. 반대로 <씨받이>에서는 비극의 형태로 재빨리 그것이 되돌아온다. 여기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나는 이미 매우 느슨하게 임권택의 영화가 유물론적 경험론에 사로잡힌 것 같다는 표현을 썼다. 임권택은 종종 자기가 경험한 세계를 그 어떤 다른 것으로 환원불가능하게 다룬다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그것은 일회적인 세계이며 거기서 발을 빼는 것은 이미 경험한 것을 추상적으로 만든다는 두려움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완강해진다. 이때 그의 영화 안에서 내가 느껴보는 것은 완전히 파악될 수 없는 현실 안을 통과하기 위해서 (아마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데, 아마도) 그 세상을 살아내고 있던 부모의, 부모의 부모의, 태도를 경유해서만 그 거리를 확보하고 있다는 흐릿한 인상이다. 고향이라는 공동체. 안전한 집.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반복적인 문중제례. 앞으로 나아간다기보다는 원을 그리는 것만 같은 시간의 계절. 여기에 갑자기 단절이 생긴다. 한국전쟁과 가출. 그런 다음 그가 부모 곁을 떠나서 만난 세상과의 관계에서 그는 그 거리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처럼 현실과 마주친다. 어떤 우회도 없는 경험. 그는 부모 곁을 떠나는 순간 그 보물을 잃어버렸다. 물론 이 표현이 몹시 위험하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차라리 이것은 비평의 언어가 아니라고 말해도 좋다.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설명할 수는 있다. 임권택의 영화를 나누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이번에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기준으로 둘로 나눠보고 싶다. 임권택은 양쪽 모두에서 현실 속에서 해소되지 않는 적대적인 관계들이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 지를 다룬다. 이때 기이하게도 해방 이전을 다룰 때마다 임권택은 그 시간을 일종의 진공상태와 같은 상황에로 밀어 넣는다. 더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다시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 그냥 그 자체로 주어진 세계. 그의 영화에서 이 시간이 역사성을 갖게 된 것은 <개벽> 이후에서나 가능해진 일이다. 임권택은 매번 이 시간에 이를 때마다 그 자체로 완결된 것만 같은 세계 안에서 사건을 만난다. 사건은 왜 발생하는가. 그것은 이 세계 안에 무언가 불완전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건 앞에서 비로소 진공상태는 자기의 형식 안에 결여된 구멍을 내보이고 임권택은 그 안으로 파고 들어가 그 내용을 끌어내는 것으로 자기 서사를 진행시켰다. 이때 주인공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견디는가. 결정적인 차이는 해방 이후의 영화들에서 주인공들이 사건으로부터 소외되어 나간다면 반대로 해방 이전의 영화들은 그 사건 안으로 주인공들이 완전히 동화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 말을 유심히 읽어주기 바란다. 그들은 상황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동화되는 것이다. 이 동화의 과정에서 임권택은 일관되게 유교라는 규율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바라보면서 사건의 순환을 더 없이 순종적으로 따라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주인공들이 파괴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가련하게 지켜본다. 반대로 이 규율이 파괴되자 임권택은 그 상실감에 가득 차 때로는 우울하게, 종종 차디차게, 그리고 어떤 동정심도 없이, 그저 수수방관하면서 쳐다본다.














거꾸로 뒤집어 세운 카메라

나는 여기서 이제 이 영화가 할 이야기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다음, 그러니까 마지막 장면 다음의 마지막 장면이라고 불러야 할, 그저 괴이하다고 밖에 달리 말하기 힘든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마영은 호기롭게 기노시타 형사를 꾸짖은 다음 그를 기다리고 있을 감옥에로 향하는데 그때 이제까지 그의 뒤를 쫓으면서 동포를 밀고했던 처단하려고 했던 사내의 기습적인 칼이 날아와 그의 등에 정확하게 꽂힌다. 물론 그 사내는 마영이 이제까지의 그의 행위를 반성하고 독립운동을 하던 김참의의 아들을 구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이러니한 성공. 매번 실패하던 그 시도는 실패해야할 순간 기다렸던 것처럼 성공한다. 그 사내는 자신의 시도가 성공하자 재빨리 경찰청을 빠져나가려고 한다. 그때 등에 칼이 찔린 채 바닥에 쓰러져 죽어가면서 마영은 그 사내를 걱정하듯이, 마치 그 사내가 자기 말을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중얼거리면서 말한다. “잡히지 마라, 잡히면 안 돼, 안 돼, 바보 녀석, 그리로 가면 잡힌다구, 담 쪽으로 뛰어, 그렇게 힘을 내서 뛰어, 잘했어, 왜놈에게 잡히면 안 돼지” 하지만 그게 이 장면의 전부가 아니다. 임권택은 도망치는 사내를 마영이 쓰러져 누운 채 죽어가면서 바라보는 시선으로(point_of_view_shot) 찍었다. 이때 영화는 도망치는 사내를 아래 위가 뒤집힌 이미지로 보여준다. 그래서 사내가 담장을 넘을 때 뛰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추락하는 것처럼 보인다. 임권택은 이런 방식으로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찍은 적이 없다. 마영은 칼을 맞은 다음 그냥 돌아서서 볼 수도 있었다. 혹은 바닥에 누웠다 할지라도 구태여 카메라를 거꾸로 세워서 찍을 필요는 없다. 아니, 차라리 화면의 아래 위를 바꾸기 위하여 마영을 바닥에 눕혔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임권택의 카메라를 거꾸로 뒤집어 세운 것일까. 나는 여기서 마영을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안으로 통합시키려는 유혹에 대한 임권택의 완강한 거절의 제스처를 느낀다. 마영은 자신과 아들 사이의 관계를 경유하여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를 회복한 것에 대해서 (어쩌면)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그가 회복한 것은 일제 강점기의 억압받는 민족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뿌리 깊은 유교의 부름인 것이다. 그래서 이 아래 위가 뒤집힌 카메라는 마영이 중얼거리는 그 말, 그가 자신의 등에 칼을 찌르고 도망치는 사내에 게 베푸는 관용에 대해서, 그 오해에 대해서, 그 잘못된 환대에 대해서, 교정하는 시선이다. 여기에는 민족을 향한 어떤 열정도 없다. 그러기는커녕 마영의 저 희생적인 용서에 대해서 아이러니한 감정을 품고, 약간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차갑게 거리를 유지하려는 듯이, 그렇게 뒤집는다. 임권택은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는 지 잘 알고 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보물이 무엇이 아닌 지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분리선. 하지만 아직은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임권택에게 일제 강점기라는 시간은 그것을 분리해내는 시간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이 모든 질문의 출발처럼 보이는 그 한복판에 선다. 그런 다음 그 안에서 나눔의 질문을 시작한다. 어떤 분류. 모두들 각자의 방식의 분류를 해냈다. 그걸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이 보여준다. 박찬욱의 분류. 김지운의 분류. 류승완의 분류. 최동훈의 분류. 분류의 소음들. 그때 누가 어떤 부름을 따르느냐는 질문을 해야 할 것이다. 부름들 사이의 차이. 이 차이가 그들의 인물들을 이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을 각자의 주체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주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 안에서 임권택은 민족적인 주체와 유교적 주체를 분리해낸 다음 한 쪽을 버리고 다른 한 쪽을 따라가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이 장면을 대사와 이미지 사이를 둘로 찢어낸 것만 같은 결단의 이유일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주체 앞에 붙어있는 이 술어에 대해서 반복해서 더 많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아마 그래야만 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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