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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없는 집 (김현정, 2017)

나만 없는 집

해마다 쏟아지는 독립영화들 중에는 가족이라는 소재에 기대는 작품이 많다. 심지어 가족이라는 관계가 인물의 직접적인 갈등의 요인이 아닌 작품이라도, 가족의 문제는 그 결함의 주위를 배회한다. 가족은 사적이고 친밀한 감정으로 구성되지만, 인정과 투쟁을 반복하는 부조리한 관계의 시작이다. 그래서 무수한 영화들은 폭력의 기원을 가족으로부터 찾는다. 이런 류의 영화들은 대체로 가족 중 누군가가 부재하거나, 무관심하거나 혹은 폭력적이다. 이러한 파괴된 가족들의 등장은 가족이라는 구성체의 불신으로부터 비롯된다. 다르게 말하자면, 무능력 즉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부재다. 이것이 무수히 많은 독립영화들에서 등장하는 가족이라는 실체이자, 가족에 관한 상상력이다. 한편 이러한 이야기들의 대량 생산은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한 발설되지 않은 욕망을 반증한다.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라는 현실화되지 않는 유토피아 같은 것 말이다. 성취되지 않는 욕망은 그 탄성의 한계를 넘지 않는다면 삶을 추동하는 에너지로 전이되지만, 욕망의 끝없는 실패는 우리를 괴물로 만들기도 한다. 그것을 어떤 이들은 아이에서 어른으로의 ‘성장’이라고도 부른다. 자신의 경험담을 소재로 제작된 김현정 감독의 단편 <나만 없는 집>은 그 ‘성장’의 어떤 지점을 건드린다.

영화는 세영이 혼자 식탁에서 아침을 먹는 것으로 시작한다. 세영의 프레임 안으로 엄마가 무심히 들어오면서 아무 말도 않은 채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마신다. 그 순간 정적인 화면을 파괴하듯 요란하게 들어오는 세영의 언니는 준비물을 사야 한다며 돈을 달라고 떼를 쓴다. “엄마는 밥 안 먹나”라는 세영의 관심에도, 엄마는 자신의 말만 한다. 가족과의 대화는 자주 어긋나고, 그들은 각자의 욕망으로 달려간다. 이날 아침, 그 누구도 세영의 식탁에 앉지 않는다. 밥 먹는 장면은 이후에도 등장하지만, 세영은 늘 혼자 먹는다. 세영의 밥 먹는 장면은, 고된 생활 탓에 아이들에게 무심해질 수밖에 없는 엄마와 사춘기에 접어든 언니 그리고 가족의 관심을 받기를 원하는 세영의 묘한 긴장감으로 팽팽하다. 그렇게 영화는 세영의 인정투쟁의 장이 된다.

사실 세영이 밥을 먹는 첫 장면에서 흥미로운 점은 화면의 가시적 정보보다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먼저 도착한다는 것이다. 나는 인물과 사물의 배치를 본격적으로 인지하기 전에, 세영의 입안에서 덜그럭대는 숟가락 소리에 먼저 반응했다. 이 장면에 감각의 소실점을 부과할 수 있다면 혹은 보이지 않는 내밀한 미장센이 있다면, 그것은 불쾌할 정도로 청각을 지배하는 쇳소리다. 그렇게 보면, 세영이 밥을 먹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숟가락이 입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뿐, 정확히 어떤 물질이 입안으로 들어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세영의 입안으로 들어가는 물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보여주지 않는 것,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여주지 않는 것은 그것이 중요치 않거나 화면에서 배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가족들이 음식을 함께 만들거나,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이 없다. 김현정 감독은 가족의 문제를 주로 다루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과는 다르게, 음식의 역사성(기억)을 지워버린다. 마치 입안으로 빈 숟가락만 무한 반복하는 허기의 형상, 즉 관계의 허기가 <나만 없는 집>의 주인이자 가족이다.

그리고 영화는 세영과 엄마 그리고 언니와의 화해의 시간을 보여준 후 다시 한번 우리를 섬뜩한 세계로 인도한다. 세영에게 비빔면을 사 오라고 시킨 언니는 사라지고 없다. 물이 끓는 동안, 세영은 텅 빈 식탁에 앉아 과자를 입에 넣는다. 세영의 입은 마치 소심한 복수를 하는 것처럼 과자들을 산산조각내고, 더욱 편한 자세로 고쳐 앉아 과자를 부서뜨린다. 쾌감과 잔혹이 동시적으로 느껴지는 이 장면은, 더 이상 엄마의 딸이자 언니의 동생으로서의 세영이 아닌, 다른 인물로 느껴지게 한다. 이 섬뜩함의 과정이 어른이 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성장통은 어렴풋이 기억하겠지만, 자신이 어떻게 어른의 문턱에 닿았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이 섬뜩하고 괴기스러운 감정이 나의 유년 시절을 호출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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