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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당신 (이영, 2015)

불온한 당신

레즈비언인 감독 ‘이영’은 1945년생의 ‘바지씨’인 ‘이묵’을 만나기 위해 여수로 내려간다.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바지씨는 동성 연인 관계에서 남성의 역할을 맡는 여성을 지칭하는 은어였다. 사실 이묵은 스스로를 남자로 인식해왔다. 감독은 그런 그의 소소한 일상을 촬영하고 과거의 삶에 대해 묻는다. 한편, 그의 이웃은 남성스러운 외모를 지닌 이방인 감독의 성별을 궁금해한다. 이묵은 곤란해 하는 그녀를 두둔하기 위해 애쓴다. 당황하는 감독의 모습에는 그대로 그의 젊은 시절이 투영된다. 감독은 그를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함께 식사 준비를 하고 집안일을 하며, 흡사 다정한 부녀의 모습을 연출한다. 감독은 이묵을 태운 리어카를 조심스레 끌거나 그의 눈가를 꼼꼼히 닦아주기도 한다. 그들은 피가 아닌 억압받는 소수자성을 공유하며 유사 가족을 형성한다.

감독은 서울로 온다. 이제 인물 다큐멘터리는 급히 방향을 선회해, 조직화된 반동성애 운동 진영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탐사 보도의 형태를 띤다. 감독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일련의 인권조례들을 좌절시킨 보수 기독교인들의 공세를 꼼꼼히 기록하지만 녹록지 않다. 이제 이묵을 대하던 친밀한 손길은 촬영을 방해하는 불특정 인물들을 밀어내거나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기 위한 거친 손짓으로 변한다. 아울러 감독은 ‘세월호 사고’와 같은 동시대의 굵직한 사건을 조망한다. 보수 집회에서 세월호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며 유가족들을 비난했던 인물이, 뒤돌아서서는 퀴어 퍼레이드를 반대하기 위한 명목으로 지금은 세월호 추모 기간이라는 근거를 드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인다. 성 소수자 혐오를 선동하는 집단의 비이성적이고 광기 어린 목소리의 모순성은 한국 사회의 공시적 맥락 속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혐오 세력들은 상대방에게 빈번히, “니들은 애미, 애비도 없냐”고 소리친다. 그들은 왜 각자의 신념에 따라 충돌하는 공론장에서 사적인 가족을 환기시키는가. 그들이 부모를 상기시키면서 우선시하는 것은 사랑과 배려가 아니라 복종을 강요하는 절대적 위계이다. 감독은 이에 대답하듯, 다시 이묵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 모든 혐오의 시선들을 버티고 살아낸 그가 곧 내 어머니이자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들처럼 서로의 말 못 할 아픔을 알아채고 보듬는 자들로 이뤄진 관계야말로 가족의 원형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영화는 이묵의 이야기로 문을 열고 닫는 구조이며, 그 사이를 동성애 인권운동 진영과 반동성애 진영 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채우고 있다. (물론 그사이에 일본의 레즈비언 커플인 ‘논’과 ‘텐’의 달달한 사랑을 잠시 보여주기도 한다. 어쩌면 이것은 이묵이 들려주는 과거 연애담의 재연과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혐오 선동 세력들이 폭언을 하는 장면들은 분노 어리고 때로는 수치스러운 감정을 한껏 고양시킨다. 견디기 버거워질 때쯤, 영화는 다시 이묵의 삶으로 돌아간다. 이묵이 담담하게 읊조리는 회고담은 목청껏 뱉어내는 혐오 발언을 감싸 안는다. 그 분노와 수치를 수없이 감내하며 오늘에 이르러 마침내 차분하게 일상을 영위하는, 그리하여 세상을 통달한 듯 현자의 따뜻한 미소를 짓는 그를 통해 우리는 위로를 받는다. 이내 격앙된 감정들은 사그라진다. 앞서, 그는 여성과 동거를 할 때마다 이웃들의 수근거림을 감수해야만 했다고 말한다. 그러난 결국에는 그 이웃들도 그들의 선함에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을 집으로 초대하곤 했다. 이것은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지닌 이들을 일깨우는, 오래 묵은, 그러나 언제나 유효한 일화로 빛을 발한다.

그러나 감독은 잔인하게도(!) 다시 동성애 반대 진영의 외침에 귀 기울인다. 그들은 어김없이 퀴어 퍼레이드를 훼방 놓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암전된 화면 위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지만 그들이 북을 두드리며 외치는 소리들은 그치지 않는다. 아마도 감독은 관객들이 이묵이 건네는 위로에 안주하기를 원치 않는 듯하다. 저 밖에 여전히 혐오 세력들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있으며, 고로 이묵이 진정 바라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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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남다은(영화평론가)
    201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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